우리 같이 초등학생 때로 한 번 돌아가봅시다. 지금은 미술시간이고 우리의 눈 앞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옆자리 친구들도 나도 각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제58회 소년한국일보 미술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한 거제미술교육학원 정인혜(거제 기성초) 어린이의 "우주로 간 우리집"
여기서 주목해봐야할 점은 너도 나도 많은 친구들이 시간을 더 준다면 종이가 흰 공간이 없도록 모든 부분을 색칠하려고 한다는 점이죠. 심지어 흰부분을 흰색으로 칠하기도 하구요.
우리에게 도화지와 색칠도구가 있으면 빈 공간을 모두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흰색이 넓은 면적을 볼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생각나는대로 칠하는 것 뿐이죠.
이미지 출처 : 애플
우리가 좋아하는 애플 패키지를 보시면 흰 도화지 가운데 애플 로고나 제품사진이 딱 하나 있을 뿐이죠.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이 말은 유명합니다.
“Less is more”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쉽게 말하면 그만 그리고, 그만 칠하란 얘기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한 색깔별 반팔티 100명 기억나시나요? 그것과 맥이 같습니다. 애플로고가 하나의 색이고 제품이 하나의 색이라고 보면 이 운동장에는 1000명이 한 목소리로 애플만 외치고 있는 거죠. 알아듣기 쉽겠죠?
PPAP
아니, 그래서 그만 그리라고요?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인데요? 여러분이 허전해서 그렸던 선, 삼각형, 사각형, 그림 다 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남는게 글밖에 없는데 너무 허전하지 않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투머치한 귀걸이, 목걸이, 팔찌, 체인을 하나만 남기고 빼는 중이거든요.
우리의 디자인이 완성도가 낮아보이는 첫번째 이유는 “과함”에 있습니다. 사람의 입이 하나인 이유는 하나의 목소리만 내기 위해서죠. 이것저것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야구중계와 농구중계를 동시에 듣는다고나 할까요?
입을 하나로 모아 핵심만 전달하는 데에 집중합시다.
빨강은 임포스터였습니다.
알겠어요. 허전하긴 하지만 하라는 대로 그림이랑 선을 다 뺐어요. 근데 디자인 까막눈인 내가 봐도 완성도가 떨어져보인다구요!
알아요, 압니다. 우리가 살면서 꼭 가져야 하는 마지막 한가지를 설명드릴게요. 바로 여유입니다.
소개팅에 나가서 여러분이 무호흡으로 상대방에게 5분동안 속사포랩을 귀에 때려박는다면 그걸 다 듣고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요?
귀에서 피맛이 난다
말을 천천히, 숨도 쉬어가면서 그리고 상대방의 말도 들어봐야죠. 이건 라디오 방송이 아니라 대화니까요. 여유가 없으면 상대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시각디자인이 영어로 Visual communication design입니다!)
오케이, 알겠어요. 그럼 이걸 내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하는 건데요? 같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내가 들고 있는 이 도화지에 여유를 준다. 떠오르는 게 있나요?
네, 우리 그림의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는 두번째 이유는 바로 여백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디자인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합니다. (도화지 빽빽하게 채운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러면 지금 다 지우고 글만 남아있는데, 이 글 간격을 전부 체조 간격으로 벌려! 처럼 다 띄우라는 얘기인가요? 자자, 차근차근 합시다.
우리가 수학여행을 가면 어딜 가든 줄을 서서 다니죠. 두줄로 서서 인원체크도 하고 짝을 지어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줄을 설 때 우리는 아무데서나 가서 서 있지 않죠? 우리가 속한 그룹, 같은 반에 가서 줄을 섭니다.
우리가 쓴 글도 마찬가지죠. 같은 반은 같은 반끼리, 다른 반은 다른 반끼리 우선 모읍니다. 구분이 되려면 반과 반 사이에는 간격이 조금 넓어야겠죠?
다른 내용들이랑은 거리를 두고 같은 내용들끼리는 함께 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햇님반과 달님반을 나눴으면 이제 아이들에게 양팔 간격으로 좌우로 나란히!를 시킵니다. 아무튼 모두 같은 간격으로요! 그럼 이제 우리가 보는 모습은 마치 구령대에서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을 바라보는 모습이 됐을 겁니다.
같은 반 애들끼리도 너무 가까이 붙여놓으면 싸움나요!
우리는 이 “같은” 간격에 집중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변태니까요! 아니라고요? 보면 기분 좋아지는 영상을 한 번도 안 보신 분은 당장 나가세요. (딱딱 맞아 떨어지게 잘리는 영상 말이에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본능적으로 우리는 안정감을 찾습니다. 이 안정감은 모두가 같은 모습을 보일 때 느껴집니다. 어느 것 하나 걸리는 게 없어 불편하지 않다는 얘기죠.
이 정도만 하셔도 충분히 우리의 디자인은 이전 보다 깔끔해졌을 겁니다. 여기에 추가로 집중할 부분에 집중하여 메아리를 만드는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부터는 감각의 영역이니 다루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업을 챙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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